올햄Oliverham

도쿄 · 신바시서울 밖

다이이치호텔 트랙스, 신바시의 숨은 석양 자리

Cafe Bar TRAX

요즘 일이 정신없이 바빠서 도쿄 한 번 가는 날만 기다렸어요. 출장이 아니라 그냥 며칠 빠져서 사람 많은 데 안 가고 조용히 좋은 공간만 보고오자는 생각이었고.. 도쿄는 역시 혼자 돌아다니는게 최고입니다..

그 중에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 있었어요. 에디터 동원님(@editor_dongwon) 인스타에서 본 신바시의 다이이치호텔, 그 3층 카페바 트랙스. 도쿄에서 숨겨진 매력적인 공간을 큐레이션하시는 분이라 평소 자주 보고 있었는데, 이번에 시간 맞춰서 직접 들렀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editor_dongwon/

공간 편집장(@editor_dongwon) • Instagram 사진 및 동영상

에디터 동원님 인스타

카페바 트랙스 (Cafe Bar TRAX)

도쿄도 미나토구 신바시 1-2-6, 다이이치호텔 도쿄 3F

JR 신바시역에서 지하통로로 연결돼서 비 오는 날도 우산 없이 갈 수 있어요. 티타임 15:0017:00 / 바타임 17:0023:30.

  • 운영 시간은 가게 사정에 따라 조금 변경될수도 있습니다.

여행지에서 구글로 보시는 분들을 위해 구글맵도 첨부합니다

https://maps.app.goo.gl/aLhE8kjGNXiC48ZUA

Cafe Bar TRAX · Japan, 〒105-8621 Tokyo, Minato City, Shinbashi, 1 Chome−2−6 第一ホテル東京 2階

Cafe Bar TRAX 2

신바시는 도쿄에서 약간 묘한 결의 동네예요. 골목으로 들어가면 야끼토리·꼬치·사케 가게들이 좁은 길에 빼곡한 일본 직장인의 술집 거리고, 길 한 블록만 건너면 시오도메 쪽 빌딩숲이 펼쳐져요. 다이이치호텔은 그 두 풍경의 사이에 자리 잡고 있어요.

Cafe Bar TRAX 3

Cafe Bar TRAX 4

호텔 들어가는 순간 분위기가 한 톤 바뀝니다. 1938년에 개관한 호텔이라 도쿄에서 가장 오래된 럭셔리 호텔 중 하나예요. 전쟁 전에는 제국호텔·산노호텔과 함께 도쿄 3대 럭셔리 호텔로 꼽혔다고 들었습니다. 1993년에 21층으로 새로 지으면서 “엘레강스 & 엑설런스” 컨셉으로 다시 태어났는데, 그 결이 로비에서부터 그대로 보여요.

이탈리아풍 풍경화가 그려져 있고, 천장에는 네모난 박스 우물형 천장에 조명이 떨어져요. 클래식 유럽 호텔 결인데 너무 무겁지 않게 풀어낸 느낌이에요. 한국의 호텔들에서는 잘 안보이는 느낌입니다. 솔직히 조금은 올드한 느낌이 드는 건 맞습니다. 역사깊은 호텔이니까요.

그래도 대리석과 화이트 실내, 웅장한 로비에, 뭔가 높아보이고 대단해보이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뭔가 특별한 공간에 온 느낌입니다.

Cafe Bar TRAX 5

3층 카페바 트랙스에 도착해서 안내받은 자리는 통창 옆이었어요. 자리 앉아서 창밖 보는데, 트랙스라는 이름의 의미가 그제서야 이해됐습니다.

TMI지만, 앞에 보이는 건물은 치과 건물입니다.. 일본을 하도 오다보니 한문이 보여서 이제 읽히네요.

TRAX = TRACKS, 그러니까 기차 선로예요.

신바시역이 바로 옆이라, 신칸센·야마노테선·게이힌토호쿠선·도카이도선 같은 일본 주요 노선 기차들이 끊임없이 오가는 풍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영상이나 사진으로 보는 것 보다 훨씬 실물이 낫습니다.

고가 위 기차들과 오가는 사람들을 한눈에 보기 좋은 자리입니다. 도시의 동맥이 시각적으로 흘러가는 자리예요.

Cafe Bar TRAX 6

자리는 크림색 윙백 가죽 의자와 테이블로 되어 있어요. 천장은 우드 패널에 동그란 포트홀 같은 조명이 박혀 있고, 벽엔 액자 아트. 30대인 제가 들어가기에는 약간 어색할 정도로 중후한 톤이긴 했습니다.

손님은 거의 다 어르신이었어요. 정장 차려입은 일본 회장님 같은 분들이 띄엄띄엄 앉아서 조용히 이야기하시는 분위기. 평일 오후라 그런지 제가 그 공간에서 가장 어린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뭐 그거랑 상관 없이, 뷰에 집중하다보니 아무 신경도 쓰이지 않았습니다.

Cafe Bar TRAX 7

자리에서 가만히 앉아서 통창만 보고 있어도 한 시간이 그냥 갑니다. 풍경이 멈추지 않고 계속 흐르는 자리라, 사색하기에 이만한 곳이 없어요. 도쿄 다회차 여행객 입장에서 “이번엔 사람 많은 명소 말고 진짜 좋은 공간만 보자” 싶을 때 답이 이런 자리라고 할 수 있죠.

호텔라운지 느낌을 주는.. 확실히 자리간 간격이 여유로워서 옆 대화가 방해가 안됩니다.

대화와 테이블, 그 순간에 집중할 수 있게 기획하고 만든 공간이라 만족도가 높습니다.

좁은 공간의 한계점과 공간 절약의 그 중간쯤 하는 도쿄의 분위기와는 달라서 좋았습니다.

Cafe Bar TRAX 8

저는 글렌피딕 12년 한 잔이랑 올리브 모듬을 시켰어요. 저녁 약속이 있어서 가볍게 한 잔만 할 생각이었거든요.

잠깐 위스키 얘기를 좀 하고 가자면..

셰리·버번 캐스크 혼합 숙성인 글렌피딕, 연수는 오래 안되었지만 그래도 단맛이랑 시트러스가 깔끔하게 같이 올라옵니다.

호텔 바에서 가장 무난한 셀렉션이긴 한데, 제대로 위스키를 즐기려면 몰트바나 빈티지 보틀바를 가야합니다.

나중에 한번 정리해서 올려보려고 합니다.

아무튼 기본기 좋은 한 잔으로 창밖 보면서 천천히 마시면서 멍때리기 좋았습니다.

Cafe Bar TRAX 9

올리브 모듬은 위스키랑 잘 맞았습니다.

짭짤한 게 단맛을 자연스럽게 받쳐주거든요. 한 입 가져가고, 창밖 기차 흘러가는 거 한 번 보고.

분명히 어제까지는 회사에서 시달리고 있었는데, 이렇게 잔잔하게 한숨 돌릴 수 있는게 너무 행복했습니다.

한시간이나 앉아있었습니다.

재밌었던 게 시간대 전환이었어요. 16시쯤 들어갔는데 트랙스는 15시부터 17시까지 티타임, 17시부터 23시 30분까지 바타임으로 운영되더라구요.

17시 정각이 되니까 직원이 조용히 메뉴판을 바 메뉴판으로 바꿔주시더라구요. 분위기가 살짝 진해지면서, 창밖도 마침 해 떨어지기 시작하는 시간이라 톤이 한 번에 깊어졌어요.

이 1시간 정도가 이 가게의 진짜 베스트 타임이라고 봐요. 티타임의 가벼움하고 바타임의 무게감이 한 번에 겹치는 시간대예요.

Cafe Bar TRAX 10

해 떨어질 때쯤 일어났는데, 일어나기 직전에 본 바 카운터가 진짜 멋있었어요.

위스키 보틀이 벽 한 면을 가득 채우고 있고 백라이트가 따뜻하게 들어오는 위에, 통창 너머 신바시 노을이 같이 들어오는 모습이 카메라에는 다 안담기네요.

다음엔 바타임에 맞춰서 일부러 와야겠다 싶었습니다.

도쿄에서 일하는 친구 데리고 한번 올 예정입니다.

Cafe Bar TRAX 11

긴자나 신바시 일대에 와도 관광객들이 흔하게 가는 곳들에 별 흥미를 못 느끼는 분, 도쿄 두세 번째 이상 가서 숨겨진 매력적인 공간을 찾는 분에게 추천합니다. 잠시 풍경 감상하면서 사색할 수 있는 자리예요.

도쿄 출장 오는 분에게도 좋아요. 호텔 로비 분위기 그대로 3층까지 이어지는 공간이라, 미팅 사이 잠시 시간 보내거나 노트북 켜고 작업하기에 어색하지 않은 자리예요, 자리 간격도 여유롭게 하나의 공간을 즐길수 있다는게 좋습니다

개인 평점은 5점 만점에 5점. 다음 도쿄 때 무조건 다시 갈 거예요.

호텔바석양도쿄신바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