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셰프블루, 기념일에 숨겨두고 가는 충정로 프렌치


아직은 형편이 넉넉하지 않다보니, 기념일마다 어떤 식사를 함께 할지 고민이 되곤 합니다.
보통 기념일에 양식과 관련된 코스의 자리 잡으려고 하면 보통 청담, 한남 파인다이닝, 서촌 프랑스 가정식, 그리고 압구정 호텔 레스토랑 이런 곳들을 떠올리고, 검색하게 됩니다.
강남에서 근무하는 저에게 서촌은 분위기가 좋다고 알고 있어도, 거리 때문에 사실 가기가 쉽지 않더라구요. 청담,한남 쪽은 예약 오픈되자마자 자리가 없어지고, 그렇다고 정통 프렌치 스타일도 아니고, 흑백요리사 효과인지 너무 좀 따분한 느낌까지도 들게 합니다.
양식이라고 하면 보통 이탈리안을 떠올립니다. 우리가 양식, 파스타-피자라고 생각하는 것들입니다. 파인다이닝의 이탈리안은 물론 차원이 다른느낌을 주긴 하지만, 편견이 생겨있기 때문에 좀 지루한 느낌을 줍니다.
그래서 프렌치를 떠올리게 되었구요. 일본 사람들도 프랑스를 매우 좋아하죠. 고급 양식 -> 프렌치/ 일반 양식 -> 이탈리안 이라는 스테레오 타입이 생겨있는 것 같습니다.
무튼, 기념일 이야기로 다시 돌아와서, 기념일을 기념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시간입니다.
소중한 사람과 기념하고 축하하고, 더 사랑을 키우기 위해 함께 시간을 보내는 자리인데, 맛있는 음식, 핫플 가서 딸랑 1시간정도 밥먹고 나오는건 생각보다 가성비가 안나옵니다. 특히나 저같은 영업업무를 하는 사람들은 워낙 식사를 빨리 하기 때문에, 조금 길고 차분히 먹으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도 매우 중요한 포인트로 따져보며 식당을 검색하게 되면, 프랑스 가정식이 대안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조용히 코스 하나만 붙잡고 두-세 시간 정도 이야기하고 싶은데,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그런 자리는 생각보다 안나옵니다. 카페에서 3시간을 있을 수는 있지만, 집중하기는 어렵구요.
얼마전에 올렸던 쿠라리에도, 사실은 1시간정도 이야기하기 좋은 곳이지 분위기있게 깊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은 아니거든요.
그리고, 프랑스 가정식은 진짜 오래전부터 다시 먹고 싶다고 생각만 하고 있었어요. 사실 프랑스 요리를 제대로 직접 경험해본 적은 없습니다. 항상 신문, 사진이나 SNS, 유투브에서만 동경하며 보았던 요리입니다.
특히 전에 개봉했던 고독한 미식가에서 고로 상이 프랑스에 있는 의뢰인을 만나기 위해 잠시 들린 가게에서의 어니언스프는 제 입맛마저도 자극했었고, 호기심을 더 키웠었거든요.
그렇지만 제 생활반경, 라이프스타일 상 프랑스 가정식을 제대로 느낄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념일을 핑계 삼아 자리를 잡았습니다.
르셰프블루는 프랑스 대사관 총주방장이셨던 프랑스인 셰프 로랭 달레와 이미령 대표님이 부부로 운영하시는 곳이에요. 위치가 서울역-충정로 사이라 강남 근무자한테는 서촌보다 훨씬 붙기 좋고, 역사도 2012년 방배동에서 시작해서 지금 중림동 자리까지 세 번째 자리라 분위기가 잘 자리 잡힌 곳입니다.
르 셰프 블루 (Le Chef Bleu)
서울 중구 청파로 435-10 1,2층
충정로역 도보 8분 / 서울역 도보 10분, 만리재 초입 골목
영업 11:30~21:30 (브레이크타임 있음)
가게 사정에 따라 조금 변경될수도 있습니다.

가는 길 자체가 저는 좋았어요. 누군가는 좀 무섭다고 생각할 수는 있는데, 외국인의 시선으로는 한국의 감성이 물씬 느껴지는 길이었습니다.
저희는 충정로역에서 내려서 걸어 들어갔는데, 서울역에서 서울로 7017 따라서 걸어와도 자연스러운 코스라 데이트로도 나쁘지 않아요.
재미있는건 걸어 들어가는 길에 오래된 상가들이랑 뒷쪽 신축 아파트가 대비되는 인상이 그대로 보입니다. 중림동 이 골목이 재개발 예정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지금 이 모습을 이렇게 남겨두는 게 좀 아깝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더라구요.


가는 길이 정겨운 느낌이 듭니다. 서울역 쪽에서 오면 깔끔 느낌인데, 충정로에서 뒷쪽으로 가면 재개발 구역이다 보니 상당히 오래된 연식의 건물이 많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한데, 막상 문 열고 들어가면 그 대비가 오히려 이 가게의 매력이 됩니다. 강남 한복판이 아니라 서울역 뒷골목에서 프랑스인 셰프 코스를 만난다는 것, 인상적이었습니다.
(입구 사진을 못찍어서, 르셰프블루 캐치테이블에서 가져왔습니다.)
https://app.catchtable.co.kr/ct/shop/lechefbleu?from=share&type=DINING

가게는 1층,2층으로 나뉘어 있어요. 입구가 1층이고 메인 자리는 2층인데, 저희는 늦게 예약해서 1층 자리로 안내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조금 아쉬웠는데, 그 날 2층에서 단체 예약이 있었어서 위쪽이 좀 시끄럽고 북적북적하더라구요. 저희는 오히려 1층에서 둘만 조용하게 세 시간 있었는데, 이게 오히려 더 좋았습니다. 다음번엔 2층을 구경할 수 있을 것 같네요.
2층 사진도 마찬가지로 르셰프블루 캐치테이블에 올라온 사진을 가져왔습니다.
프랑스 저녁 식사가 원래 시간이 오래 걸리는 스타일이라, 이렇게 조용한 자리 하나 잡아 놓고 코스 흘러가는 대로 이야기 길게 하기에 이만한 자리가 없더라구요. 사장님께 여쭤봤더니 셰프님이 프랑스인이시고 대사관 셰프, 사모님도 프랑스에서 같이 지내다 오셨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렇게 부부가 같이 운영하시는 곳이에요.
가게 이름 “블루(Bleu)“는 프랑스어로 “입문자, 신참”이라는 뜻이라고 해요. 셰프님이 요리 처음 시작했을 때 마음가짐을 잊지 않으려고 그렇게 지으셨다고 하는데, 이 이야기 듣고 나니까 접시 하나하나 정성이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1층 창가 자리에는 큰 화분이 놓여있고 벽에는 오토바이 그림 액자가 걸려있어요. 콘크리트 노출 벽에 화이트 원형 조명이 대비되어서 프렌치 시골집인가 싶다가도, 도시 절제된 톤이 같이 살아있는 공간입니다.
뒷쪽이 차량을 댈 수 있는 주차장이다 보니, 시선을 잡기 위해 배치한 포인트로 잘 동작하기도 했습니다.
여유가 생기고, 조금 더 친해지면 저기에 둘 그림이라도 하나 선물하고 싶습니다.
저희는 이번에 고메 메뉴 125로 갔어요. 아래쪽에 10만원 6디쉬 코스가 있고, 이건 12.5만원 7디쉬 코스인데, 기념일이라 이왕이면 좋은 걸로 시켰습니다. 저는 큰 차이가 없다면 가장 비싼 코스를 시켜보려고 합니다. 그게 그 업장의 모든걸 다 담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해서요.
와인은 한 병 다 먹기는 조금 부담이 될 것 같아서 화이트랑 레드 각각 글라스 한 잔씩 시켰어요.
** 소개에 앞서.. 요리에 대한 소개와 이야기를 상세히 해주셨는데, 다 기억이 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검색하고 공부해봤는데, 그럼에도 실제와는 재료 이름이나, 음식이름, 식재료 이름과 방식에서는 좀 차이가 있거나 잘못된 정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간접체험하실 수 있도록 그 느낌에 대해서는 가능한 상세히 표현해 보려고 합니다.**

첫 코스로 아뮤즈부쉬 3종이 나왔어요. 미니 팬케이크에 연어 그라브락스랑 오렌지빛 소스, 오븐에 구운 슈크림 퍼프, 미니 파이스트리에 초콜릿 얹은 것. 접시 위에 빨간 미니 에펠탑 조각이 딱 꽂혀 있는데, 처음엔 좀 웃기다가도 셰프님 위트가 느껴져서 은근 재밌더라구요.에펠탑은 먹는게 아니라고 거들어주시는 것도 재밌었습니다.

연어 그라브락스가 처음엔 그냥 짭조름한 훈제 연어 정도로 예상했는데, 마리네이드가 예상보다 부드럽고 옆에서 소스가 짠맛을 잡아줘서 팬케이크 위에서 세 개 층이 하나로 붙어요. 슈크림 퍼프 안에는 치즈가 진하게 들어있어서 첫 모금부터 프렌치라는게 명확히 짚어집니다. 다음으로 어니언 수프가 나왔는데, 이게 오늘 하이라이트였어요. 사실 저는 예약을 잡으면서부터 이 어니언 수프를 기다렸어요. 위에서도 얘기했던 고로 상의 이야기.. 고독한 미식가 극장판에서, 고로 상이 파리에 가서 프랑스 전통 어니언 수프를 처음 먹는 씬. 그 장면이 계속 남아있었어서, 이번에 프렌치 자리를 잡으면 진짜 프랑스인 셰프가 만드는 어니언 수프를 한 번 먹어보고 싶었어요.
한 숟갈 떠보니 양파를 정말 오래 볶으신 캐러멜라이즈 단맛이 진하게 올라오고, 크림이 위에서 그 짙은 맛을 부드럽게 눌러줍니다. 고소하고 달고 맛있어요. 노란 꽃 한 장이 위에 얹어져 있어서 스푼 뜰 때마다 시각적으로도 재밌어요. 어니언 수프는 프렌치 하는 곳이면 웬만해서는 다 하지만, 여기 어니언 수프는 양파를 몇 시간을 볶은 건지 흔한 어니언 수프와는 확연히 다릅니다.

앙트레는 새우 세비체랑 파이스트리 파르시 조합이었어요. 흰 큐브랑 파슬리 오일이랑 발사믹 리덕션이 접시에 서클로 뿌려져 있고 보라 꽃도 한 송이. 새우 세비체가 시트러스 향이 강해서 파이스트리의 버터 톤과 대비되는데, 이게 접시 안에서 서로 밀고 당기는 느낌이 좋더라구요.


파피요트 열 때가 은근히 좋아요. 종이 안에서 김이 확 올라오면서 허브 향이 코로 먼저 훅 들어옵니다. 열어보면 안에 조개, 생선, 토마토, 허브 초록 소스가 있는데, 조개는 미리 다 벌어져 있고 생선 살은 폭신하게 익어있어요. 종이 안에서 다 익은 건데 소스가 재료들이랑 다 섞여서 국물처럼 되어있어서, 이걸 다 흡수한 생선살이 미쳤어요.
파피요트 - 종이.. 재미있는 네이밍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식 요리 이름이더라구요. 이래서 사람은 배워야하나 봅니다.

와인은 루아르 지역 샤도네이 물랑 다쟝(Moulin d’Argent)을 화이트 잔으로 골랐어요. 시원한 산도가 있어서 파피요트 국물이랑 잘 어울렸어요. 로고 보시면 파란 수탉이 있는데, 이게 프랑스 상징인 콕 골루아입니다. 프랑스의 감성을 잘 담았다 생각했습니다.

랍스터 비스크가 다음으로 나왔어요. 국물이 진갈색으로 진하게 우려져있고, 랍스터 살이랑 보라색 꽃이 얹어져 있습니다. 첫 한 숟갈에 랍스터 껍질을 몇 시간 우린 진한 향이 확 느껴지고, 중간에 크림이 위에서 국물이랑 섞이면서 맛이 서서히 바뀝니다. 첫 숟갈이랑 마지막 숟갈이 완전히 다르게 마무리되는 국물이에요.

프랑스요리라고 하면 떠올리는 대표적인 요리, 에스카르고도 나왔어요. 껍질 그대로 6알, 6구 홈이 있는 도자기에 파슬리 버터 소스가 껍질 안에 가득 차 있습니다. 사실 저는 달팽이 요리를 이번이 거의 처음이라 살짝 걱정하고 왔어요. 근데 먹어보고 편견이 그냥 깨졌어요. 기름 향이 고소하게 올라오고, 살이 약간 골뱅이 같은 식감인데 훨씬 부드럽고 파슬리 버터가 그 안에 그대로 배어 있어요. 이거 하나로도 이 가게가 흉내내는 프렌치가 아니라는 게 그대로 느껴집니다. 너무 맛있었고,또먹고 싶습니다. 괜히 달팽이 요리라고 하는게 아니었더라구요. 맛있으니까 그랬던 거였습니다.

메인은 필레미뇽 스테이크. 레드 와인 소스에 아스파라거스 한 대, 감자 그라탱, 팽이버섯이 같이 나옵니다. 이 즈음에 레드 와인을 잔으로 한 잔 붙였어요. 미디엄으로 익혀 나오는데, 소스가 스테이크 옆에 걸쳐서 그라탱 감자한테 먼저 배어들어가 있어요. 스테이크 자체도 좋지만 이 감자 그라탱이 소스를 흡수하면서 진짜 진해집니다. 저는 스테이크보다 감자에 손이 더 많이 갔어요.
식사 페이스가 세 시간 가까이 되는데, 저희가 자리 잡고 있는 동안 위층에서 단체 손님들은 나가시고, 저희만 남아서 조곤히 이야기했습니다. 프랑스 저녁이 원래 이런거구나 싶은 게, 서두르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요리가 나오면 이야기 하다가 한 입 하고, 다시 이야기 하고. 다음 접시가 언제 나올지 초조해할 필요가 없는 자리라, 기념일 저녁에 이런 자리 하나 있으면 정말 든든하겠구나 싶더라구요.
물론 저는 나오면 거의 몇분도 안되서 뚝딱 하고 조금 기다리기는 했습니다. 격식이 조금 부족했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참을수가 없더라구요.



식사 마치고 나와서 서울로 7017 따라 걸으면서 잠깐 산책했어요. 배가 진짜 터질 것 같이 좋게 먹어서 걸어야 되는 상태였어요. 서울역 뒤편에서 시작해서 남대문 쪽으로 넘어가면서 야경 보는 동선이 좋더라구요. 프렌치 코스 세 시간 마치고 걸으면서 조금 소화도 시키고, 시내 야경까지 자연스럽게 붙는 동선이라, 기념일에 이 가게로 자리 잡으시면 코스에 산책까지 붙여서 하시면 좋습니다.
주차는 근처 공영주차장 이용하시는 게 편해요. 골목이 좁아서 가게 앞은 대기 어렵고, 청파로 큰 길가 공영주차장 대시고 도보 3~4분 들어오시면 됩니다. 저희처럼 대중교통이면 충정로역에서 걸어오시는 게 제일 편하고, 서울역에서 서울로 7017 따라 도보 코스로 와도 좋아요. 예약은 캐치테이블로 미리 잡으셔야 하고, 코스는 예약 시 미리 지정해서 잡으셔야 합니다.
추천드리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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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기념일, 연애 기념일 자리 찾는 2~30대, 40대 커플 또는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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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가정식 로망 계속 있었는데 자리 잡을 계기가 없었던 30-40대 직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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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고 맛있는 음식과, 소중한 사람들과 길게 이야기하는 격식이 필요하면서도 캐주얼한 모임장소를 찾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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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충정로 근처에서 조용한 저녁 자리 잡고 싶은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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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에서 근무하시는데 서촌 프렌치는 멀어서 못 가는, 서울 시내 대체지가 필요한 분
개인 평점은 5점 만점에 5점입니다. 다음에는 아래쪽 6디쉬 코스 말고 이번에 못 먹어본 디저트 코스까지 붙는 걸로 한 번 더 오려구요. 다음에는 프랑스 좋아하는 외국인 친구도 데려와볼 생각이에요.
다만 예약이 필수이고, 코스 페이스가 세 시간 가까이 되기 때문에, 가볍게 30분 안에 식사 끝내고 싶으신 분한테는 안 맞을 수도 있어요. 참고하세요.